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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우리 마을 이야기 - 평택 대추리 평화마을의 끝나지 않은 싸움 / 2018.05.14

2024-12-11
조회수 207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아름다운 작전명으로 대추리 마을이 부서지던 날, 2006년 5월 4일. 체포된 사람만 524명에 달할 만큼 진압은 잔혹했다. 5월은 대추리 주민들에게 달력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경기도 평택에는 ‘대추리 평화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집은 모두 44가구. 대부분 미군기지 확장사업으로 2007년 정든 마을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마을은 겉보기에 매우 평화롭다. 거리는 깨끗하고, 집들은 모두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다. 잘 가꾸어진 너른 마당이 집마다 딸려 있다. 그 중 가장 볕 좋은 곳에는 길고양이들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느긋하게 누워 있는 모양새가 마을의 인심을 짐작케 한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은퇴 후의 삶에 꼭 등장할 것 같은 전원주택단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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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오제 아키라의 만화 <우리 마을 이야기>의 한 장면. | 이미지프레임


이 ‘아름다운’ 풍경은 지난해 한 장의 사진에 담겨 SNS에 떠돌았다. 노무현 정부의 이주대책이 잘 처리되었음을 칭찬하는 글과 함께. 그 글은 사드 배치에 반대해 투쟁하는 소성리 주민들을 질책하는 말로 끝났다. 부아가 났다.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아름다운 작전명으로 대추리 마을이 부서지던 날, 2006년 5월 4일. 체포된 사람만 524명에 달할 만큼 진압은 잔혹했다. 5월은 대추리 주민들에게 달력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어김없이 올해도 5월이 왔다. 올해는 대추리 주민들이 아주 오랜만에 청와대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는 것도 힘겨운 노인들이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먼 길을 온다. 모두가 아름다운 끝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 이야기>(오제 아키라, 길찾기)를 다시 펼쳐야 했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우리의 마을들


한국에서 일본 도쿄로 항공편을 이용해 갈 때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나리타공항과 하네다공항. 우리나라로 치면 나리타공항은 인천공항, 하네다공항은 김포공항쯤으로 비유된다. 나리타공항은 도쿄에서 약 60㎞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 공항이 지어진다는 소식이 일본에서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진 것은 1966년. 하네다공항의 과밀화 해결책으로 새로운 공항 건설이 계획된 것이었다. 나리타공항이 들어설 예정지에는 산리즈카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 뉴스를 보기 전까지 전혀 소식을 알지 못했다.


산리즈카 주민들은 삶터를 지키기 위해 싸움에 나섰다. 이 산리즈카 투쟁은 매우 격렬했고, 일본의 사회운동사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으로 위치한다. 투쟁 시작 2년 만에 80% 정도의 주민들이 협의매수를 해 떠났다. 그러나 끝까지 버틴 이들이 있었고 결국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낸다. 또한 공항 건설계획의 상당 부분을 변경하게 만들었다. 신나리타공항은 1978년에야 개항했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산리즈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시작된 이후 5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제 아키라가 섬세히 펼쳐놓은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다보면 대추리 마을의 운명과 겹치는 장면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란 사실은 허상이라는 것. 그 가상의 ‘국가’의 이익을 저해할 때 국가는 잔혹한 지배자가 된다는 것. 우리는 산리즈카와 대추리의 닮은 모습을 통해 지역을 넘어 애초에 ‘국가’가 지닌 속성을 철저히 목격하게 된다.


산리즈카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화산회(직경 4㎜ 이하의 돌가루로 이루어진 화산쇄설물)로 만들어진 지역으로 원래는 농사에 좋은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일왕가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산리즈카가 농사 짓기 좋은 땅이 된 것은 종전 후 농민들이 20년 가까이 땅을 개간해 왔기 때문이다. 대추리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 때 한 번, 한국전쟁 때 또 한 번. 군사시설을 짓기 위해 살던 곳에서 두 번이나 강제로 쫓겨난 농민들은 갯벌을 개간해 농토를 만들었다. 팔순의 노인이 떠올리기만 해도 피눈물을 흘리는 고된 노동을 통해 갯벌은 간신히 옥토가 되었다.


땅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온 이들은 말한다. 땅에도 삶이 있다고. 사람에게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단계가 있듯이 땅에도 그런 삶의 흐름이 있다. 황새울. 짓밟힌 그 땅은 ‘청춘’이었다. ‘대추’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풍요한 땅. 그 땅의 눈부심을 추억할 때 농민의 눈은 가늘게 빛난다.


지금도 산리즈카 마을에는 열 가구 정도가 남아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한다. 농민에게 그토록 간절한 것이 땅이다. 그러니 땅을 잃은 농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겠는가.


저항을 분쇄하는 법 ‘서로 싸우게 하라’


<우리 마을 이야기> 속 산리즈카 주민들은 ‘조건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대립한다. 선(線)은 학교 안의 아이들 사이에도 그어지고, 한 집안 안에서도 그어진다. 이것을 ‘보상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말할 때 보상을 이용해 갈등을 부추기는 진짜 존재는 지워진다. 국가는 ‘보상’을 통해 ‘당근’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채찍을 휘두른다. 공권력을 동원한 물리적 폭력은 ‘공포’를 준다. 주민들끼리 싸우고 갈라지면, 국가의 싸움은 그만큼 손쉬워진다.


산리즈카의 풍경은 그대로 대추리의 풍경이었다. 굳이 5월이 아니라고 해도, 대추리 평화마을 주민들의 일상 속에서 대추리 투쟁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주협상의 조건으로 살던 집을 제 손으로 부수고 나와야 했던 주민들은 그날 이후 입을 다무는 일에 더 익숙해졌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너무나 견고하고 높았던 ‘국가’의 벽 앞에서 크게 허물어져 본 이후,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벽을 쌓았다. 그것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상처의 상당 부분은 오래 함께 해온 마을 주민들끼리 다투고 갈라져야 했던 탓에 생겼다. 산리즈카에서처럼 ‘선’은 한 몸 같던 형제 사이에도 그어졌다.


정부는 2007년,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을 포기하는 대신 상업용지 8평을 분양해주기로 약속했다. 땅을 잃은 농민들의 생계대책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업용지와 근린생활용지 중 추첨을 통해 결정해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둘은 값어치가 다르다. 그것도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개발로 토지를 수용당한 주민들과 경쟁을 붙였다. 또다시 주민 대 주민 갈등구조를 만든 것이다. 대추리 평화마을의 ‘행정명’은 대추리가 아니라 ‘노와리’다. 주민들은 이주하더라도 ‘대추리’의 이름만이라도 가져가길 바랐다. 땅의 혼이라도 품길 바란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약속했던 이름조차 주지 않고 있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것을 잃고 죽음 같은 무기력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혼자 어루만지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국가가 부르짖는 ‘평화’는 무엇이고 ‘번영’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박희정 기록활동가>



출처 :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80508101816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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